이태리 나폴리(Napoli)라고 하면
- 세계 3대 미항(호주 시드니,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이태리 나폴리)
- 피자
- 폼페이와 베수비오 화산
- 마피아 세력의 중심지
.. 등이 떠오릅니다.
로마와 밀라노에 이은 제3의 도시 나폴리.
이탈리아 수트를 말할 때, 이 나폴리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1. 나폴리 패션 발전의 배경
18세기부터 이미 나폴리는 남성복, 남성 패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도시로 여겨졌습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나폴리는 전통적으로 유럽(영국, 프랑스, 스페인) 부호들의 휴양지였고,
이렇게 휴양차 나폴리를 방문한 부호들은 나폴리에서 머무는 몇 개월 동안 입을 옷을 맞춰야 했는데,
각 국의 부호들은 당대 최고 패션의 중심지였던 영국 새빌로(Savile Row) 스타일 등의 수트를 나폴리 현지의 양복점에서 주문하곤 했습니다.
나폴리의 '강남'쯤으로 인식되는 명품 번화가인 키아이아(Via Chiaia) 거리와 '명동'쯤으로 인식되는 톨레도(Via Toledo) 거리를 따라 수많은 재단사들이 남성복 매장(맞춤 양복점) 문을 열었고
이에 따라, 나폴리는 맞춤양복, 맞춤정장, 패션 산업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 나폴리의 Sarto(사르토/Tailor)와 테일러링 하우스는 영국 정장 스타일을 바탕으로 각 나라별 스타일을 계승, 융화, 발전시켜 나폴리 특유의 스타일을 창조하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영국 슈트가 영국의 암울하고 변덕스러운 날씨를 반영하여 색감이 차분하고 짜임새가 단단한 반면에,
나폴리에서는 나폴리 특유의 화창하고 더운 날씨를 반영하여 화려한 색감과 하늘하늘 얇은 두께로 착용자의 몸매를 타고 흐르는 스타일의 수트를 탄생한 것입니다.
2. 나폴리 맞춤 양복점(테일러샵)의 역사
남성 정장 패션을 크게 두 스타일로 나눈다면 영국 스타일과 이태리 스타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 현재 모던 클래식이라 하는 이태리 스타일은 1930년대 나폴리에서 발전된 것인데, 로마, 피렌체, 밀라노 등의 스타일도 있긴 하지만 나폴리 스타일과 크게 구분되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기 때문에 나폴리 스타일을 이태리 남성 양복 패션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봅니다.
현재 나폴리식 테일러링(tailoring)의 뿌리를 찾는다면 약 700여 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14세기에 이태리의 왕족, 귀족 및 부유층에게 기성복(RTW)을 만들어 공급했던 나폴리의 가장 오래된 테일러링 단체라고 할 수 있는 'Confraternita dell’arte dei Giubbonai e Cositori(자켓제작자 재단사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1351년 설립)
전통적으로 정장(Suit)은 귀족과 부호들을 위한 의복이었으며, 지금과 같이 공장을 통한 대량생산 체계가 없던 시기에는 대부분의 귀족, 부호 들은 재단사를 집으로 부르거나 재단사의 소규모 공방에 직접 찾아가 옷을 지어 입곤 했습니다.
이후 19세기 중반부터 맞춤 양복점에도 현재와 같은 형태의 길거리 매장(로드샵)이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성이 좋아져 실력이 좋은 양복점은 금세 입소문을 타고 크게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크게 유명해진 로드샵 형태의 맞춤 양복점 중에 하나로는 살바토레 모르치에로(Salvatore Morziello)가 설립한 '모르치에로'가 있었습니다.
1871년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룬 제1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도 이 살바토레 모르치에로에서 자신의 옷을 주문할 정도로 모르치에로는 나폴리에서 가장 유명한 양복점이었습니다.
국왕이 옷을 주문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양복점이니 국왕을 따라 왕족 및 귀족도 단골손님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1914년 발발. 1918년 종전)의 영향으로 모르치에로는 폐점하게 됩니다.
그 후, 모르치에로에서 살바토레 모르치에로와 공동 경영자이자 솜씨 좋은 사르토(Sarto) 지오반니 세라피니(Giovanni Serafini)의 양아들 '젠나로 루비나치'(Gennaro Lubinacci / 젠나로 루비나찌)가 양아버지를 이어 다시 양복점을 열게 되었으며,
이때 젠나로 루비나치는 모르치에로에서 수습생으로 시작하여 손 바느질로 유명세를 떨쳤던 유능한 사르토(Sarto / 테일러 / 재단사) 빈센조 아톨리니(Vincenzo Attolini / 빈첸초 아톨리니 혹은 빈센초 아톨리니 혹은 빈첸조 아똘리니)를 영입하였습니다.
젠나로 루비나찌. 그리고 빈첸초 아톨리니.
이 둘은 나폴리 스타일이 시작된 테일러링 하우스라고 알려진 '런던 하우스(London House)'를 오픈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나폴리 스타일이 태동하던 시기였고 테일러샵(양복점)이 줄지어 있던 영국 런던 Saville Row 거리의 패션이 정장의 정석이고 최고의 패션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으므로 나폴리에 있으면서도 이름을 런던하우스라고 칭한 것입니다.
젠나로 루비나치와 빈센조 아톨리니의 만남으로 나폴리 양복 스타일은 혁신적으로 바뀌고 새로이 정립되어 현재까지도 그 스타일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3. 런던하우스 이후 나폴리 수트 스타일의 계승과 발전과 계승
이후 빈센조 아톨리니가 세상을 떠나자 빈센조의 아들이었던 체사레 아톨리니는 런던하우스와 결별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브랜드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계 3대 정장으로 유명한 '체사레 아톨리니(Cesare Attolini)'입니다.
체사레 아톨리니는 현재 아들인 쥬세페 아톨리니와 마시밀리아노 아톨리니에 의해 계승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편, 런던하우스는 현재 젠나로 루비나치의 아들 마리아노 루비나치. 또 그의 아들 루카 루비나치에 의해 계승되고 있습니다.
런던하우스는 1963년부터 루비나찌(Rubinacci)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로고는 런던하우스의 로고를 유지한 채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수트 스타일의 역사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나폴리.
그리고 그 나폴리 수트 스타일의 중요한 두 역사적 인물인 젠나로 루비나치와 빈센조 아톨리니.
현재 유명한 이태리 수트 브랜드는 모두 이 둘의 후손이거나 제자인데, 체사레 아톨리니, 스테파니 파르코, 키톤, 안토니오 파르코, 이사이야, 스틸레 라티노 등이 그 브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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