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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와 패션/패션, 비스포크

체사레 아톨리니 - 세계 3대 수트 정장

by 후원자 2020. 4. 20.

지난 포스팅에서 이탈리아 나폴리 스타일 수트를 말하며, 나폴리 스타일을 시작했다고 인정받는 젠나로 루비나치와 빈센조 아톨리니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태리 나폴리 정장 스타일의 시작과 발전 - 젠나로 루비나찌, 빈센조 아톨리니

이태리 나폴리(Napoli)라고 하면 세계 3대 미항(호주 시드니,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이태리 나폴리) 피자 폼페이와 베수비오 화산 마피아 세력의 중심지 .. 등이 떠오릅니다. 로마와 밀라노에 이은 제3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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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포스팅에서 루비나치 가문과 아톨리니 가문의 자체 브랜드가 후손들에 의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두 가문 중에서 빈첸초 아톨리니가 시작하여 현재 체사레 아톨리니라는 브랜드로 이어지고 있는 역사에 대해 더 알아보겠습니다.

나폴리 수트 스타일의 창시자 중 하나로 불리는 빈센조 아톨리니(Vicenzo Attolini)

 



1. 빈센조 아톨리니의 나폴리 디자인 탄생 배경

세계적인 미항(美港)으로 손꼽히며 전통적인 유럽 부호들의 휴양지였던 나폴리에서 남성 패션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힘입어, 1930년대 나폴리에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의 스타일이 모두 혼합된 스타일이 새로이 탄생했습니다.

1900년부터 1930년대가 되기까지 약 30여 년 동안 나폴리 수트 스타일은 영국 수트 스타일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영국 수트 스타일은 영국의 날씨가 반영되고 또 군복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비, 바람을 막을 두터운 두께감과 군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뻣뻣하고 경직된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나폴리는 기후가 덥고 습해 영국의 기후와는 완전히 달랐음에도 당시 나폴리에서는 이러한 영국의 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습니다.

 

2. 빈센조 아톨리니가 정립한 나폴리 디자인

빈첸조 아톨리니는 이러한 영국식 스타일의 불편함을 개선하고자 하였고,

그의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은 결국 나폴리 정장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에 이르게 됩니다.

빈센조 아톨리니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라인과 특이한 마감 디테일로 자켓을 디자인하고 재단하고 꿰매었습니다.

나폴리의 기후를 반영하여 자켓 내부의 라이닝을 최소화했고, 어깨를 짓누르던 어깨 패드를 없앴습니다.

수트는 이제 셔츠처럼 가볍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자켓이 얇아짐에 따라 자켓은 6번, 8번, 10번이나 접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나폴리의 Sarto(테일러)는 모두 전통적인 스타일을 고집했고 이렇게 대담하고 파격적으로 자켓을 디자인한 것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당시 이탈리아에는 과거의 정적인 전통을 부정하고 기계문명이 가져온 도시의 역동성과 속도감을 새로운 예술로 표현하려는 Futurismo(푸투리스모 / Futurism: 미래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빈센초 아톨리니가 탄생시킨 스타일도 바로 이러한 미래주의가 반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 빈센조 아톨리니가 제작한 자켓 / 안감과 어깨 패드가 없고, 어깨 셔링이 들어간 'Spalla A Camicia'(셔츠모양 소매)와 인체의 곡선을 반영한 가슴 주머니 - 작은 배 모양의 바르케타 포켓(Barchetta Pocket)이 눈에 띈다.

 

3. 빈센조 아톨리니 나폴리 스타일의 성공과 발전

이러한 하나의 혁명과도 같은 아톨리니의  슈트는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으며, Totò(토토), Vittorio De Sica(비토리오 데시카), Marcello Mastroianni(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같은 이태리 영화배우나 영화감독이 즐겨 입었습니다.

또 우리에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작)에서 레트 버틀러 역을 연기한 배우로 유명한 Clark Gable(클라크 게이블)과 같은 유명 할리우드 배우도 이 아톨리니의 수트를 입었다고 알려져 아톨리니의 수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1960년작 영화 '기적의 나폴리'(It Started in Naples)에 출연한 Vittorio De Sica(좌)와 Clark Gable(우)


아톨리니의 수트는 유명 스타만 입었던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국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그리고 영국의 패셔니스타이자 사랑을 위해 왕좌를 포기했던 것으로 유명한 윈저 공(Duke of Winsor / 에드워드 8세)도 즐겨 입었습니다.

영국 테일러가 만든 수트만 입는 것을 고집했던 윈저 공이 이태리 나폴리 여행 중 카프리 섬 광장을 거닐다가 빈센조 아톨리니가 만든 수트를 입은 지나가는 행인의 복장에 매료되어 그 행인을 멈춰 세우고 누가 옷을 디자인했냐고 물어보았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왕좌 대신 사랑을 택했던 당대 최고의 로맨티스트이자 패셔니스타였던 영국의 윈저공(Duke of Winsor)

 

 

 

4. 체사레 아톨리니의 설립과 발전

젠나로 루비나찌에 의해 런던하우스에 고용되어 유명세를 떨치던 빈센조 아톨리니는 독립하기를 원했지만 젠나로 루비나치는 빈센조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빈센조는 런던하우스에서 일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공방을 직접 운영하였는데 이러한 관계 속에서도 런던하우스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습니다.

이렇게 빈센조 아톨리니가 설립한 공방은 1대를 빈센쪼 아톨리니로 시작하여,

빈센조 아톨리니의 사후에 그 아들인 2대 체사레 아톨리니가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브랜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비록 1970년대에는 가족 간의 협업이 무너지며 잠시 침체기를 겪기도 하였지만, 1987년부터 체사레 아톨리니의 두 아들인 3대 첫째 아들 쥬세페 아톨리니가 CEO를, 둘째 아들 마씨밀리아노 아톨리니가 크리에이티브 총괄을 직접 담당하여 3대가 이어가며 계속 명품 수트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5. 체사레 아톨리니의 현재

현재도 체사레 아톨리니의 모든 수트 제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손바느질로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수트 한벌을 제작하는 데는 약 30시간의 인력이 소요되며, 1년에 약 11,000여 벌의 수트가 제작되고 있는데, 이는 하루에 제작되는 수트가 약 30여 벌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로지 손바느질로만 제작하다 보니 기계로 제작하는 회사의 1/5 수준의 생산력이지만,

그야말로 이탈리아 나폴리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모두 손바느질로 꿰매어 만든 옷이다 보니 그 정성과 노력은 공장에서 기계로 생산된 수트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도 체사레 아톨리니는 세계 3대 수트, 세계 3대 정장 안에 손꼽히며 세계 각국의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즐겨 입는 옷으로 유명합니다.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가 TV드라마 'The New Pope'에서 입은 체사레 아톨리니 의상(협찬) / 사진: 체사레 아톨리니 공홈(cesareattolini.com)

 

체사레 아톨리니의 룩북 / 사진: cesareattolin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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