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츠 시계'라고 하면 시계를 잘 모르는 분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쿼츠시계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벽시계, 탁상시계 그리고 손목시계. 배터리를 넣으면 시계가 작동하고 초침이 뚝뚝 끊기듯 움직이는 시계.
(물론 물 흐르듯 흐르는 초침의 쿼츠도 있고, 반대로 예거 르쿨트르(Jaeger LeCoultre)의 지오피직 True Second 모델처럼 기계식 시계지만 쿼츠처럼 초침이 뚝뚝 끊기며 작동하는 시계도 있긴 합니다.)
그리고 다이얼에 'QUARTZ'라고 새겨져 있는 시계입니다.
이 쿼츠시계는 1960년대 후반부터 개발되기 시작해서 1970년대에는 기존의 전통적인 기계식 시계 산업을 위협하며 혁명적인 시계로 등장했고 그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 단순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쿼츠시계의 역사와 시계 산업에 끼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쿼츠 시계의 개발과 탄생
전통적으로 시계산업이 발달한 스위스는 중립국의 이점을 누리며 국가 총동원령이 내려져 군수물자 외에는 다른 물품을 생산하지 못해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던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스위스는 계속 시계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경쟁력 있던 독일의 글라스휘테(글라슈테 / Glashütte) 지방의 시계산업도 2차 대전중과 전쟁 종식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침체기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과는 달리 스위스 시계 산업은 경쟁자 없이 세계 시계 시장의 50% 이상 점유율이라는 유일무이한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2차 세계대전 후부터 기술의 발전으로 시계산업에서도 1950년부터 기존의 기계식 시계를 벗어난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구동되는 시계에 대한 기술 개발이 이루어졌는데, 배터리로 작동하는 해밀턴 500이라든지, 부로바에서 판매한 아큐트론이라는 시계가 그러한 쿼츠 시계의 전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계 기술의 발전에 따라 1960년 초 스위스 시계업계에서도 시계 제조업체 20여 개 사를 컨소시엄으로 하여 쿼츠시계를 개발하는 회사(CEH)를 스위스 뉴샤텔(Neuchâtel)에 설립하였고, 동시대에 일본에서도 세이코가 배터리로 구동되는 쿼츠 시계에 대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기술개발의 결과, 1966년 스위스에서는 세계 최초의 쿼츠 회중시계가 탄생했고 이듬해인 1967년에는 쿼츠 손목시계의 시제품도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세이코 측에서도 1964년 크리스털 크로노미터 QC-951라고 불리는 휴대용 쿼츠시계를 개발했고, 1967년에는 스위스 컨소시엄과 마찬가지로 세이코도 쿼츠 손목시계를 선보였습니다.
196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세이코는 드디어 쿼스시계의 혁명적인 서막을 올리는 세계 최초의 쿼츠 시계인 아스트론을 출시하였습니다.
세이코의 아스트론이 세계 최초의 쿼츠시계라고 보는 데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아스트론 출시를 기점으로 쿼츠파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압도적이므로 쿼츠파동을 일으킨 최초의 쿼츠 시계라고 봅니다.
한편, 스위스에서도 1970년 시계 박람회인 바젤 박람회에서 Ebauches SA(유명한 무브먼트 제조사 ETA의 전신)가 BETA 1 무브먼트가 탑재된 BETA 21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스위스의 각 시계 제조사에서도 이 BETA 21을 이용하여 쿼츠 시계를 출시하는 등 쿼츠 시계 개발을 진행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스위스의 쿼츠 시계 개발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시계 제조업계는 쿼츠시계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했습니다.
스위스 특유의 시계 제조 기술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고, 전통적으로 시계는 기계식으로 만들어져야 하고 장인이 만든 아름다운 예술품과도 같은 사치재인 시계에 배터리를 넣고 인간미 없이 구동되는 방식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스위스를 제외한 다른 국가(일본, 미국, 홍콩 등)에서는 이 쿼츠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쿼츠 파동의 시작과 영향
값비싼 가격과 정확도가 떨어지는 기계식 시계에 비해 쿼츠시계는 무척 싼 가격에 놀랄만한 정확도를 보여주었는데, 특히 쿼츠시계의 저렴한 가격은 그동안 부유한 사람들만 소유할 수 있었던 사치재인 시계를 이제는 누구나 쉽게 구입하고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쿼츠 무브먼트의 간단한 구조가 시계를 저렴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쿼츠 시계의 인기는 파죽지세와도 같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며 스위스 시계 산업을 위협했습니다.
결국 1978년 즈음에는 쿼츠 시계의 인기가 기계식 시계의 인기를 추월하였고 이에 따라 기계식 시계 제조만을 고집하던 스위스 시계 산업은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일본과 미국의 시계 산업은 쿼츠 시계를 바탕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반면에 스위스 시계 산업은 수익성이 안 좋아져 스위스의 수많은 시계 제조회사가 파산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쿼츠 파동(Quartz Crisis) 입니다.
이 쿼츠 파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까지 스위스 시계 산업의 규모는 이전에 비해 크게 축소되었는데 실제로 스위스의 시계와 관련한 업체의 수는 약 1,600여 개였으나 쿼츠파동으로 600여 개 업체만 살아남아 반이상 사라져 버렸고 이에 따라 시계업에 종사하는 인원도 9만여 명에서 2만 8천여 명으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그야말로 스위스라는 한 국가의 주요 산업 자체를 뒤흔들어버린 것입니다.
쿼츠파동의 여파로 그동안 기계식 시계만을 만들던 스위스의 시계 제조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쿼츠 시계를 제조하고 출시했습니다.
쿼츠 파동을 타개하기 위한 스위스의 노력
1980년 중반까지 이어진 이 쿼츠 파동의 여파를 타개하기 위하여 스위스 안에서도 적자생존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1983년 3월에는 스위스 최대 시계그룹 ASUAG(Société Générale de l'Horlogerie SA)와 SSIH(Société Suisse pour l'Industrie Hor)가 합병되었고 이후 이 두 그룹은 SMH(Socét de Microgen)가 되었습니다.
이 SMH는 1988년 세계 최대의 시계 제조업체인 스와치 그룹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스와치 그룹은 이전의 전통적인 시계회사와는 달랐습니다.
우선 쿼츠 파동을 타개하기 위하여 과감히 쿼츠 무브먼트로 저가 시계를 만들었고, 이 시계를 플라스틱 케이스에 밀봉하여 고장이 나면 수리하지 않고 버릴 수 있는 일회용 상품으로 만들었으며, 생산은 수작업을 최소화하고 대부분 기계에 의해 생산하였습니다.
이런 과감한 결정의 결과로 수익성이 좋아지기 시작한 스와치 그룹은 쿼츠 파동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던 수많은 시계회사(브레게, 해리 윈스턴, 블랑팡, 글라슈테 오리지날, 자케 드로, 오메가, 론진, 라도, 티쏘, 해밀턴, 미도 등)를 인수했습니다.
쿼츠 파동 이후 많은 사람들이 시계를 소유하게 되자 사람들은 또다시 기계식 시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역사성과 전통성, 정교한 장인정신과 미적 매력, 화려한 디자인 및 특유의 기계적 감성과 브랜드 이미지로 시계식 시계가 다시금 명품으로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기계식 시계가 시계 본연의 기능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자 하는 사치재로서의 효용이 더 큰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쿼츠파동 이후 제2의 쿼츠파동(스마트 파동)의 시작
2000년 말부터 급속도로 스마트 폰이 보급되고 그에 따라 2010년대에는 시계 본연의 기능 외에도 스마트폰과 연계한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스마트 워치가 출시되었습니다.
2015년 애플에서 스마트워치를 출시하였는데, 현재는 이 애플워치를 포함한 많은 스마트워치가 상용화되었고 스마트 워치 기능과 더불어 운동 데이터 기능을 탑재한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 / 가민, 순토 등)도 약진하고 있습니다.
시계 산업 매출액 기준 부동의 1위는 롤렉스이지만, 최근 애플워치가 그 매출액을 앞질렀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판매대수로는 애플워치의 총판매대수가 스위스 시계 전체 판매대수를 앞지른 지 오래입니다. 2017년 4분기에 이미 애플 워치가 스위시 시계 전체 판매 대수를 앞질렀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1970년대에 쿼츠 파동으로 시계 산업이 1차 위기에 직면했다면, 2010년부터는 스마트 파동(?)으로 시계 산업이 2차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시계 업계에서도 70년대 쿼츠파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스마트 파동에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이건 영원한 것은 없으며 위기와 갈등으로 인해 발전해온 인류의 역사와 기술을 감안하면, 스마트워치의 등장이 앞으로의 시계 산업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 또 시계 산업은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매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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